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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미나라공화국 남이섬-No1

  • 작성일 : 2018-05-11 23:48:41
  • 작성자 : 박창월
  • 조회수 : 36668 명
  • 추천수 : 2 명
  • 첨부파일 :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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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른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
5월 6일
지리산 비래봉 산행을 위해
마지막 탑승 장소인  학하호두과자에서
7시10분
할매 중앙산악회 관광버스에
탑승을 했다
 
 
 
 
 
 

 
 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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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많은 비가
전국적으로 내릴 예정이라는
어제의 일기예보,
우리가 산행할 지리산 쪽으로는 더 많은 비가 내려
산행에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집행부의 판단아래
산악대장은 지리산 비래봉이 아닌
남이섬으로 장소를 변경하였다
 
 
 
 
 
 

 
 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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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선박탑승료 10000원이 추가 되었고
봄이면 꽃이 섬을 뒤덮고
여름이면 짙게 드리워진 숲그늘 아래로
강바람이 불어오는
14만평의 정원 남이섬을
가게되었다

가평나루에서 남이나루까지는
약 10분 정도 걸렸다
 
 
 
 
 
 
 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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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측의 '남이섬 드날문'과
좌측의 '입춘대길 문'으로
남이섬을 들어가고 나올 수 있었다
 
 
 
 
 
 
 
 
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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중국인 관광객 방문이 회복세에 접어들었다는
TV 보도를 들었지만
이곳 남이섬을 찾은 관관객 중 대부분이
중국인들이였다
 
 
 
 
 
 

 
 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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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늘까지 뻗어 오른 나무들과
잘 가꾸어진 정원의 크고 작은 나무들과 화초들이
숲을 이루고 있는 비오는 날의 남이섬은
 환상 그 자체였다
 
 
 
 
 
 
 
 
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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중국인 관광객을 인솔한 가이드가
남이장군묘 앞에서
설명을 하고 있다
 
 
 
 
 
 
 
 
 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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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이장군은 세종 23년 서기 1441년에 출생하여
17세의 나이로 무과에 장원급제,
1467년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여
25세에 공조판서와 병조판서를 역임하다가
유자광의 모함으로
1468년 26세의 나이에 억울하게 돌아가셨다
1818년 순조 18년에 관직이 복구되었다한다
 
 
 
 
 
 
 
 
 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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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남이장군이 지은시 -
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에고
두만강물은 말에게 먹여 없에니
남아 20에 나라를 평정치 못한다면
어찌 장부라 칭하리
 
 
 
 
 
 
 
 
 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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앞섬이라는 뜻의 南島로도 불렀던 남이섬 지명의 유래는
북쪽 언덕의 돌무더기에
남이장군이 묻혀있다는 오랜 민간전승에 기인하여
자연스럽게 정착된 것이라한다
 
 
 
 
 
 

 
 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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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65년 남이섬을 매입한
수재 민병도선생이 봉분을 만들고 추모비를 세웠다고 한다
남이장군의 행정상의 진묘는
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에 있다한다
 

 
 
 
 
 
 
 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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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이섬은 1960년대 중반부터 관광지로 개발되었고
각종 놀이시설, 숙박시설, 동물원, 식물원, 유람선 등이 있는
종합휴양시설지
 
 
 
 
 
 
 
 
 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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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02년 방영된 TV드라마
'겨울연가'의 촬영지로 유명해
내국인뿐만 아니라
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는
명소가 되었다
 
 
 
 
 
 
 
 
 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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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노래박물관 매직홀 -
 
 
 
 
 
 
 
 
 
 
 
 
 
 
 
 
 
 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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